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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너무 늦게 주어진 이석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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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7회 작성일 21-12-2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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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5년 1월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 참석해 피고인석으로 걸어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세영 | 논설위원

1988년 12월20일 ‘전사 시인’ 김남주가 광주교도소를 나왔다. ‘남조선 혁명’의 군자금을 마련하겠다며 1979년 봄 동료 전사 셋과 재벌 집 담장을 넘었다가 체포된 지 9년여 만이었다. 같은 날 시국·공안사범 281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특별사면·석방·감형 조치에는 김남주 등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관련자 12명이 포함됐다.

남민전은 1976년 이재문·신향식 등이 베트남 통일에 자극받아 결성한 자생 혁명조직이었다. 공안당국은 이들을 남한 최초의 ‘무장 도시게릴라 조직’이라고 발표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와 실탄을 절취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떼강도’ 짓도 불사했던 그들의 모험주의 급진 노선은 운동 진영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런 남민전을 노태우 정부가 ‘국민 화합’을 위한 ‘인도적 특별 조치’ 차원에서 관련자 전원을 풀어준 것이다. 야당과 사회운동 세력의 계속된 도전으로 통치 기반 자체가 불안정했던 노태우 정권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다.

2013년 9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가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됐다. 그해 3월에 있었던 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을 전쟁 개시의 징후로 오판하고 5월 중순 섹트 활동가들을 소집해 유사시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후방 교란 방안을 생각해보라 주문한 게 범죄 행위의 요체였다. 김남주의 남민전에 견준다면 말 그대로 극단주의 종말론 추종집단의 부흥집회 수준이었다.

2012년 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를 해 현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는 무척 독특한 느낌의 정치인이었다. 19대 국회 등원 초반 그를 만나본 몇 안 되는 기자들은 “1980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 같았다”고 했다. 구사하는 어휘와 말투, 사고방식 등에서 2000년대 대중정치의 문법과는 거리가 먼 ‘언더 조직’ 리더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던 것이다.

2014년 2월 1심 법원은 그에게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혐의를 적용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2심 재판부는 ‘음모’ 혐의는 기각하고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인정해 징역 9년으로 감형했다. 이러한 2심 결과는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재판 과정에서 지하 혁명조직 ‘아르오’(RO) 결성 혐의 등 무리한 기소 내용이 바로잡히고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가 선고됐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내란선동 혐의와 9년이라는 무거운 형량은 처음부터 논란거리였다. ‘구체적인 음모나 조직 없이도 청중들이 내란에 해당하는 범행을 결심하도록 유발할 위험이 있다’며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의 판단 근거 자체가 자의적인데다, 내란선동 혐의에 9년의 실형을 선고한 선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던 탓이다.

형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이석기를 감옥에 넣은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고 ‘촛불 정신의 구현자’를 자임한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다. 종교계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국제앰네스티도 가세했다.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2015년 그의 구속수감을 ‘자의적 구금’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단행된 수차례의 특별사면에 한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석기의 석방을 요구하는 나라 안팎 목소리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동안, 그는 형기의 80% 이상을 복역해 가석방 조건을 채웠다. 그사이 이석기는 시대착오적 정치 컬트의 상징을 넘어, 인식과 감각의 세계에서 추방해도 마땅한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악마화’되고 말았다. 합의된 게임 규칙을 위반한 정치적 소수파의 존재가, 공안기관·보수언론의 상징조작과 집권세력의 외면 속에 도덕적 연민과 공감의 영역에서마저 배제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이 임박했다고 쓰고 나니, 얼마 안 있어 ‘이석기 24일 오전 10시 가석방’을 알리는 속보가 인터넷에 뜬다. 그 허약하고 탈 많던 노태우 정권도 형기를 60%밖에 못 채운 남민전 전사 김남주를 취임 첫해 특사에서 풀어줬다. 상황을 바꿀 충분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다수의 ‘혐오 대상’을 편든다는 비난이 두려워 누군가에 대한 물리적 배제를 방치하는 것, 이것을 혐오가 아닌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석기 가석방, 늦었지만 잘한 결정이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4544.html?_fr=mt2#csidx32fe0fe9c9fb117a8cf3da3cb1d6d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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