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진짜 권력은 검찰과 언론이다.
2. 교육, 의료, 주거는 시장에 맡기면 안된다.
3.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을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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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민심을 이긴 정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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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1-01 00:19 조회2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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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법과 도덕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플라톤을 위시하여 위대한 사상가들은 정치를 둘 사이 어디쯤 놓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했다. 이 논쟁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쟁이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훗날 ‘유가’와 ‘법가’의 전쟁이 되어 피를 불렀다.

근대 시민혁명이 ‘왕이 법’인 왕정을 ‘법이 왕’인 공화정으로 바꾸어 놓은 지 수백년이 흘렀지만 ‘인치’와 ‘법치’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라고 통찰했다. 사람이냐, 제도냐의 문제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난제다.

진보는 비도덕적 이슈를 ‘도덕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우를 범하고, 보수는 도덕적 이슈를 ‘비도덕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우를 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보수 정권에서 예술, 사상, 종교적 이슈에 대해 사법적 개입이 자주 일어나고, 진보 정권에서 경제, 외교, 사법 이슈를 공정·정의·평등 같은 도덕적 레토릭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이 “뭐든 맘대로 해도 되는” 면책 특권이라도 받은 양 ‘선출된 권력’을 언급하면서 선출된 독재자 히틀러가 자주 소환된다. 문재인 정권을 나치와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 수도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비슷한 징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에리히 프롬은 1941년에 발표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던 독일인들이 혁명으로 세운 ‘바이마르공화국(1919~1933년)’을 붕괴시키고 나치를 지지함으로써 애써 얻은 자유를 버리고 스스로 ‘복종’을 선택했던 불가사의를 잘 분석했다.

그는 개인이 자유의 짐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존재라는 것을 갈파했다.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소로 종교를 선택하거나, 독재자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찾거나, 여론이라는 익명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는 것이다. 나치와 같은 파시즘의 정치체제는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마조히즘)’과 힘없는 자들에 대한 ‘강압적 지배(사디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통찰했다. 2020년 대한민국도 그런 기운에 휩싸였다.

진중권은 문재인 정권과 나치의 전체주의적 유사성을 비판하지만 나는 문재인 정권의 ‘연성 독재’가 갖는 한계(?)에 더 주목한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기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물리적 힘이 있거나, (그럴 수 없는 시대라면) 현실에 맞추어 생각을 바꾸는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독재’를 하거나 ‘선거’를 잘하거나 둘 중 하나다. 현실적으로 ‘긴급조치’나 ‘비상계엄’을 발동할 수 없는 연성 독재는 결국 트럼프처럼 선거에 ‘져서’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

정경심 교수가 졌고, 윤석열 총장에게 졌다.
도덕적·법적·정치적 완패 이후 ‘검찰개혁 시즌2’ 예고…
위기의 핵심은 위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으로 시작된) 검찰과의 전면전은 정권의 몰락을 가져올 전략적 패착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2020년 12월 완벽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4년 선고로 도덕적으로 패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와 징계 모두 법적으로도 패했다. 도덕적·법적·정치적 완패다. 민심도 잃었다. 자칫하면 레임덕에 빠지고 정권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다.

위기의 핵심은 위기에 동의하지 않는 데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①위기에 동의하는가? ②원인은 무엇인가? ③해결책은 무엇인가? 순으로 풀어야 하는데 위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전략적 실패를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검찰개혁 시즌2’를 예고하고 있다. 드라마든 영화든 보통 ‘시즌2’는 ‘시즌1’의 흥행 성공을 전제로 하는 게 상식인데 참혹한 흥행 참패 후 바로 ‘시즌 2’를 예고하는 것은 마케팅(?) 감각에 심각한 장애가 생겼다는 뜻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정경심 교수 재판과 윤 총장 징계를 무효화한 판사 탄핵, 검찰의 수사권 박탈, 윤석열 총장 출마 금지법, 검찰총장 지휘권과 인사권 박탈, 검찰청 폐지,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놀라운 발상이다. 거의 피해망상 수준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검찰을 없애는 게 낫다. 그러면 진중권의 말처럼 범죄는 없앨 수 없어도 적어도 범죄자는 없앨 수 있을 테니까.

정치의 사법화든, 사법의 정치화든 사법부에 민주주의를 의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사법의 과잉 지배’는 정치의 결핍이 자초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극단적으로 법에 의존하거나 도덕적 레토릭에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 민주주의는 법과 도덕 사이에서 정치가 균형을 잡고 공론의 장이 살아있을 때만 살아 숨 쉰다.

극단적 팬덤과 진영 논리가 정치와 공론의 장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렸다. 검찰개혁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전쟁을 닮았다. 스포츠는 공정한 룰, 치열한 경쟁, 깨끗한 승복으로 모두를 승자로 만든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지 않고 ‘이길’ 경쟁자로 본다는 점에서 스포츠를 닮았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까. 당분간은 불가능할 것이다. 공론이 숨을 쉴 수 없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도 숨을 쉴 수가 없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한강물을 그대로 마실 수는 없다. 정수장을 거쳐야 마실 수 있다.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이 그것이다. 불행하게도 언론은 ‘기레기’와 ‘지라시’ 취급을 받고 있고, 부끄럽게도 지식인들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반(反)지성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는 누구나 해도 되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고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숙주 삼아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선동가는 차고 넘친다. 대한민국은 이들 가짜 민주주의자·포퓰리스트·어용 지식인·사이비 언론이 키운 괴물인 ‘팬덤’의 폭력에 지배당하는 사회가 되었다. 진영 논리에 논리가 있을 리 없다. 광기가 있을 뿐이다. 공격 대상도 무차별적이다.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이다.

대통령 긍정·부정평가 20%P 차이, 중도 잃었다는 뜻…
숱한 경고에도 오만·오판·오기…대부분 그렇게 몰락했고,
국정 변화 없다면 시간은 정권의 편이 아니다

2021년에도 계속 그럴 수 있을까? 다행히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금방 복원될 리는 없겠지만 민심이 정치세력의 인식과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번지점프 같아서 일단 뛰어내리면 몇 번의 반등은 있지만 결국은 내려온다. 5년 단임제의 특성상 차기 대선이 1년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민심을 잃으면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모든 정권이 레임덕이 없을 거라고 호언했지만 모두 허언이 되었다.

문재인 정권도 스윙보터인 중도가 떠나면서 지지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긍정 평가 35%가 무너지고 부정 평가가 55%를 넘으면 레임덕은 피할 수 없다. 긍정·부정 평가 갭이 20%가 넘는다는 것은 중도를 잃었다는 뜻이다. 그 순간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은 낮아지고 패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운명공동체가 사실은 권력을 공유할 때만 유지되는 ‘이익공동체’였음을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권력을 누리고 이익을 챙기던 사람일수록 재빠르게 변신한다. 공기의 변화에 민감한 관료들도 말을 옮겨 타기 시작한다.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 각자도생의 민낯을 보이는 때도 이때쯤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기밀이 계속 새나간다.

결국 살길은 권력을 다시 잡는 것뿐이므로 역학 관계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 중심으로 재편된다. 총칼로 통치할 수 없는 시대에 대통령이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거의 임계점에 왔다. 수많은 위기의 경고가 있었으나 오만·오판·오기가 겹쳐 여기까지 왔다. 대체로 모든 정권이 그렇게 몰락했다.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국정기조의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정권의 편이 아니다.

문제는 떠나가는 중도의 마음을 되돌릴 국정기조의 변화 의지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정기조를 바꾸는 것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는 (변창흠 장관 임명에서도 드러났듯이) 늘 ‘플랜A’를 고수하는 방향이었다. 지지율이 높을 때는 상관없지만 떨어질 때는 나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의 급증이 공포와 불안을 확산시켰고 백신 확보에 대한 일관성 없는 해명도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코로나19 프리미엄도 끝나가고 있다.

야당이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러지 않았다”공격하면
여당은 “박근혜도 기자회견 많이 안 했다” 반박…
촛불정권의 기준이 촛불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으로 후퇴했다

문재인 정권의 위축된 모습은 정치분석가 윤태곤의 예리한 지적처럼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전 대통령이 소비되는 방식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에는 민주당이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야당이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러지 않았다”고 공격하면, 여당은 “박근혜도 기자회견 많이 안 했다”고 반박한다. ‘촛불정권’을 자임하는 정권의 기준이 촛불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으로 내려왔다. 정권 초에는 태극기세력이 “문재인도 퇴임 후에 감옥 갈 것이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여당 의원들이 검찰개혁의 근거로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가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대선이 불과 15개월 남았다. 사실상 대선 국면이다. 2022년 대선의 변수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윤석열 변수는 2012년 안철수보다 대선의 불확실성을 훨씬 높이고 있다. 적어도 안철수는 반새누리당 포지션을 분명하게 밝혔지만 윤석열의 포지션은 아직도 애매하다. 안철수는 건재한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대선의 ‘변수’였다. 윤석열도 지금은 변수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패한다면 (대안부재로) 강력한 ‘상수’가 될 것이다.

퇴임 후 ‘국민에 대한 봉사’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2021년 7월까지인 검찰총장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는 강해 보인다. 이제 와서는 중간에 그만두고 나갈 명분도 약하다. 그렇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도 여론조사에서 빼 달라고 다시 요구해야 한다. 지지율 1위로 정치적 파괴력을 확인한 지금 빠지는 것이 좋다. 징계에 대한 본안 소송을 위해서도 그게 좋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도 현직 검찰총장을 더 이상 대선 후보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 지지율이 꽤 높게 나온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빼주지 않았는가.

반면 친문의 근심은 커지고 있다. ‘질 것 같은’ 이낙연 대표와 ‘믿을 수 없는’ 이재명 지사 사이에서 불안한 친문은 “이길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제3후보를 찾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동력도 약하지만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치명적 약점이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대통령이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그나마 높여준다. 전두환·노태우,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모두 긴장과 갈등이 있었지만 대통령이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었다. 공중그네 서커스의 성공 여부는 자신만 믿고 날아오는 여자를 잡아주는 남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차기 대권주자의 차별화 전략을 대통령이 받아주는 것이 성공의 요체다. 김영삼·이회창, 노무현·정동영, 박근혜·김무성의 경우는 ‘믿을 수 있는 후보’를 찾다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례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가 결정적이다.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22년 대선의 ‘게임 체인저’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심리적으로 50%는 건너간 안철수가 나머지 50%마저 던졌다. 오세훈·나경원의 허를 찌르는 정치적 승부수였다. 경선 방식이 어찌 결정되든 안철수가 명분에서 이미 우위를 잡았다. 민주당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박영선과의 가상 대결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다. 안철수 대 박영선, 오세훈 대 박영선, 나경원 대 박영선 결과에서 가장 우위를 보이는 후보가 단숨에 우세를 잡을 것이다.

만약 안철수가 경선과 본선에서 승리한다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보수의 지지를 받는 중도 후보’인 안철수가 승리한다면 ‘보수의 지지를 받는 보수 후보’인 홍준표나 오세훈보다 ‘중도의 지지를 받는 보수 후보’인 유승민과 원희룡이 부각될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가 4월 보궐선거 때까지 홍준표의 복당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후에는 받아들일까. 아마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계속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하려면 당내에 홍준표의 지지율을 앞서는 후보가 적어도 두세 명은 있어야 한다. 윤석열과 안철수가 대선 여론조사에서 빠지는 순간이 기회다. 원희룡·유승민·오세훈이 홍준표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오려면 당이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

홍준표의 복당을 허용하지 않고 대선을 치른다는 전략적 구상은 2012년의 양자 구도를 폐기한다는 뜻이다. (우측에 15%의 지지를 넘지 않는 보수 후보를 둔 채로) 3자 구도나 4자 구도로 싸우는 것이 스윙보터인 중도의 지지를 받는데 더 낫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보수 결집’보다 ‘민주당 잠식’이 승리를 더 담보한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은 대선을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찐문’을 제외한 민주당의 상당수를 ‘통치 연합’에 참여시키지 않으면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민주당이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스윙보터인 중도의 지지를 계속 잃을 것이다. 중도의 지지를 잃으면 정권을 잃는다. 정권을 잃으면 친문도 친박처럼 빠르게 세가 약해질 것이다. 민심을 이긴 정권은 없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312049005&code=910100#csidx0d62cd10864c3d797a94dca28f4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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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江村) /두보(杜甫)


淸江一曲抱村流, (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 한 구비 이 마을을 안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 (장하강촌사사유) 긴 여름 강촌에는 만사가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 (자거자래당상연) 절로 갔다 절로 오는 것은 들보 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 (상친상근수중구) 서로 친하고 서로 가까이하는 것은 물 위의 갈매기라.

老妻畵紙爲碁局, (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줄 그어 바둑판을 만들고,

稚子敲針作釣鉤. (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는구나.

多病所須唯藥物, (다병소수유약물) 병약한 몸에 필요한 것이라곤 그저 약물 뿐,

微軀此外更何求. (미구차외갱하구) 하찮은 이내 몸이 이 밖에 또 무엇을 바라리오.



화석정 / 율곡 이 이


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올라라.

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

바위 / 청마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든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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