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럼

죽음을 예견한 모차르트, 저주를 내린 카르멘? 음악가의 ‘유작’에 담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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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6-20 03:18 조회2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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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혓바닥에서 송장 맛이 나는 거야. 네가 여기 있어주지 않는다면, 누가 내 가장 귀여운 콘스탄체를 도와줄 거냐고!”
-『모차르트의 편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저_서커스 펴냄 중 일부 발췌 -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분명 그럴 겁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순서겠지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어딘지 모르게 제 마음 한 편이 숙연해짐을 느낍니다. 혹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반려 동물 등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와 닿으실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동안 잘 지내려 노력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인생의 최선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서양 음악사의 위대한 음악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모차르트는 중병에 걸렸지만,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요. 비제는 원인 모를 병으로 급작스럽게 죽었습니다. 그들이 예상했든 못 했든 결국 모두 죽었습니다. 예술가가 죽기 전 마지막 남긴 작품을 유작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탄생한 작품을 완성시키기도 했고, 미완성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미완성으로 남은 유작들은 후대에 이르러 그의 음악 어법을 사용해 완성된 경우도 있고요. 죽음을 앞두고 그들이 남긴 선율, 어쩌면 세상을 향해 보낸 마지막 편지는 아니었을까요.

■‘신이시여 얼마나 어두운지!’ 헨델의 유작 ‘오라토리오 입다, HWV 70’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영국에 귀화해 평생 영예로운 음악가로 살았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메시아>로,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 위키피디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영국에 귀화해 평생 영예로운 음악가로 살았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메시아>로,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 위키피디아

“나는 성금요일 날 죽었으면 좋겠소.
그래서 선하신 하느님, 내 다디단 주님이자 구세주께서 부활하시는 날, 그분께 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싶소.”
-『헨델』 로맹 롤랑 지음_PHONO 펴냄 일부 발췌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년~1759년)은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변경했습니다. 자신이 모은 대부분의 돈을 가난한 음악가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성공한 음악가로 후배 양성을 위해 선택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 덕분일까요. 그가 평생 바라던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습니다. 신실한 영국 국교회 신자였던 헨델은 성금요일에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했는데요. 실제로 그가 죽었던 해의 부활절인 4월 14일 성토요일 오전 8시 즈음, 헨델은 영원한 안식에 빠졌습니다.

헨델은 평생 42편의 오페라, 25편의 오라토리오, 120편이 넘는 칸타타와 실내악, 12편의 오르간 협주곡, 18편의 콘체르티 그로시 등을 남겼습니다. 그중 유작은 오라토리오 ‘입다, HWV 70’입니다. 그가 죽기 8년 전 힘겹게 완성한 작품입니다. 전해지는 그의 자료들에 따르면 ‘낙타와 유명한 음악가를 수술한 경험이 있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돌팔이 의사에게 백내장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결국 양쪽 시력을 모두 잃게 됩니다. 유작을 완성하는 동안에도 시력이 점점 나빠졌고요. 헨델은 ‘신이시여 얼마나 어두운지!’라는 가사를 적을 정도였습니다. 이후에도 보조 작가의 도움을 받아 기존의 작품들을 손보기는 했지만 온전히 그가 남긴 유작은 영어로 된 이 오라토리오입니다.


■‘영원한 자비를 베푸소서’ 모차르트의 유작 ‘레퀴엠 d단조, K626’

모차르트는 작곡을 할 때, 수정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모든 음표들을 그저 악보에 그렸고, 5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 위키피디아
모차르트는 작곡을 할 때, 수정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모든 음표들을 그저 악보에 그렸고, 5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 위키피디아

모차르트는 35년 10개월 9일간 살았습니다. 음악 신동으로 세상을 누볐고, 어딜 가나 칭찬만 들으며 자랐습니다.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고용된 음악가로의 삶을 거부한 후, 빈에서 프리랜스 음악가로 굉장한 성공을 거뒀고요. 그러나 유행에 민감한 빈의 청중은 언젠가부터 그를 멀리했고, 결국 그는 말년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모차르트는 <레퀴엠> 의뢰를 받습니다. 그 즈음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던 모차르트, 그는 죽음을 예감했던 것 같습니다.

“모포 위에는 유명한 <레퀴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자신의 생각은 이러이러하니, 내가 죽거든 이걸 완성하라고 쥐스마이어에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알브레흐츠베르거가 보고하는 날까지는 자신의 죽음을 비밀로 해두라고 말했습니다.”
-『모차르트의 편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저_서커스 펴냄 중 일부 발췌 -

프레데리크 쇼팽은 자신의 장례식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고요. 쇼팽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매력에 빠져있습니다. 저도 이 작품의 진정한 팬 중 한 명이기도 해요. 아무래도 장례 미사에서 연주되는 미사곡인 만큼, 삶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참, 이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입니다. 그는 세상을 먼저 떠난 자신의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레퀴엠>을 청탁했습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주요 부분에 그의 실력으로 첨삭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자신이 이 레퀴엠을 작곡했다고 발표했어요. 지금의 시선으로는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지요. 물론 지금의 <레퀴엠>과는 다른 구성이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대필 작가에게 글을 청탁하고, 그 글을 모아 자신이 직접 쓴 책을 만드는 작가들이 당시의 그와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하는데요. 내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모차르트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불후의 명곡은 쥐스마이어에 의해 재구성됩니다. 모자란 부분은 모차르트의 방식으로 채워졌고요. 지금의 레퀴엠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 선율, 신을 찬양하는 가사, 성당에 앉아 들을 때 눈물을 흘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노래. 모차르트와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작품은 아닐까요.


■‘그 여자의 저주가 틀림없어’ 조르주 비제의 유작 ‘오페라 카르멘’

조르주 비제의 본명은 알렉산드르 세자르 레오폴(Alexandre Cesar Leopold)입니다. 조르주 비제는 그의 가족이 부르던 애칭입니다. 무려 10세에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할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던 그는 36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 위키피디아
조르주 비제의 본명은 알렉산드르 세자르 레오폴(Alexandre Cesar Leopold)입니다. 조르주 비제는 그의 가족이 부르던 애칭입니다. 무려 10세에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할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던 그는 36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 위키피디아

프랑스가 자부하는 오페라 작곡가 조르주 비제(1838~1875)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무려 10세에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했던 음악 신동이었습니다. 피아노와 오르간 등을 배우며 음악적 소양을 익혔고요. 그러던 1857년 오페라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로 당시 최고의 콩쿠르이던 로마 대상을 거머쥐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인기를 누리던 그는 1875년 3월 <카르멘>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첫 무대를 가졌는데요. 당시 파리의 청중들은 신랄한 혹평을 보냈습니다. 당시 파리 사교계에 일반적이지 않던 요소들이 이 작품을 구성하는 뼈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층민으로 담배 공장에서 일하던 카르멘이 약혼녀가 있는 남자 돈 호세를 유혹하는 설정, 그러나 그 남자를 가지고 놀다가 결국 다른 남자 에스카밀리오를 사랑하는 이야기, 배신감에 모두를 죽이고 끝나는 결말 등은 우아한 파리지앵에게 극심한 거부감을 주었습니다.

<카르멘>은 총 4막(약 3시간)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하바네라-사랑은 자유로운 새’를 비롯해 ‘여러분의 건배에 보답하리라’, ‘네가 던진 이 꽃은’, ‘저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등의 아리아가 유명합니다. 요즘의 시선으로 봐도, 막장 드라마와 맥락을 같이 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안타깝게도 비제는 특히 이 오페라에 애정을 쏟아 부은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파리의 냉담과 비판에 굉장히 낙심했고요. 초연을 마치고 석 달 후, 결국 세상을 떠나고야 맙니다. 밝혀진 그의 사인은 호흡기 질환이었지만, 당시 비제가 카르멘의 저주를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비제의 염원 때문이었을까요. 이 오페라는 비제가 죽은 후 빛을 발합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참고| 『헨델』 로맹 롤랑 지음_PHONO 펴냄, 『모차르트의 편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저_서커스 펴냄,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저_현암사 펴냄

■ 현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필자는 국내 여러 포털 사이트와 각종 매체 등에 클래식 음악 콘텐츠를 기획·연재 중이다. 카카오페이지 신인작가 공모전 2기 당선작가(2019)로, 영국 현악 전문지 <스트라드> 한국판과 <더 트래블러>, <톱클래스> 등에서 에디터·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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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江村) /두보(杜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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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去自來梁上燕, (자거자래당상연) 절로 갔다 절로 오는 것은 들보 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 (상친상근수중구) 서로 친하고 서로 가까이하는 것은 물 위의 갈매기라.

老妻畵紙爲碁局, (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줄 그어 바둑판을 만들고,

稚子敲針作釣鉤. (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는구나.

多病所須唯藥物, (다병소수유약물) 병약한 몸에 필요한 것이라곤 그저 약물 뿐,

微軀此外更何求. (미구차외갱하구) 하찮은 이내 몸이 이 밖에 또 무엇을 바라리오.



화석정 / 율곡 이 이


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올라라.

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

바위 / 청마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든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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