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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포럼

[정동칼럼]백기완 선생을 추모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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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2-26 05:59 조회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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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으로 백기완 선생님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신 후 어느 선배한테서 놀라운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나는 병원에서 누워 죽지 않겠다, 거리에서 데모하다 죽겠다”고 하셨단다. “…그렇지, 누워만 있다 가면 백기완이 아니지….” 그는 이렇게 삶 자체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셨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재작년 한내 노동자 역사 자료관 개소식에서 뵀을 때 이미 백 선생님은 많이 쇠약해져 계셨다. 부축을 받고야 한 걸음씩 옮기셨다. 그러나 막상 마이크를 잡자 특유의 쇳소리로 나름 한국 노동운동사를 공부하고 생각한다는 청중을 한방에 내리치셨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에 낑겨서 살려는 생활운동이 아니야!” 백기완 선생님이 가졌던 힘은 기백과 원칙에서 나왔다. 그는 한반도 분단의 아들이고 김구·장준하에게 배운 민족주의자며 동시에 노동해방 사상을 체득한 민중주의자였다. 그리고 인간 백기완의 반은 예술가이자 이야기꾼이었다. 나는 고난과 죽음에 가득했던 20세기 한반도가 낳은 최선의 인간 중 하나가 백기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21세기의 20년도 ‘백기완’으로서 살아냈다. 그 ‘백기완’은 고유명사를 넘어선 어떤 어휘처럼 들린다.

그 육신이 죽어 ‘고인’이 되자 ‘백기완’은 더 이상 위험하거나 불편한 존재가 아닌 모양이었다. 여당은 물론 국민의힘 따위도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한다고 했다. 진심일까? 개인들도 비슷했다. 그 삶이나 사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어용 인사, 강남좌파들과 조로한 일부 586들이 앞장서서 추모하고 명복을 빈다 어쩐다 했다. 실제로 너나들 상당수가 ‘백기완’을 만나고 벼락 같은 말을 들었으나, 제 잘나서가 아니라 ‘백기완’이 드리운 그늘이 넓어 그런 것이겠다. ‘백기완의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새삼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자들도 계셨지만, 부박한 치들은 1987년과 1992년도의 힘겨운 싸움도 제 자랑과 ‘추억질’에 갖다 썼다. ‘청년’이 어땠었느니, ‘운동’이 어떻느니 백기완을 잘 모를 젊은 세대가 어찌 보고 있을지 민망할 지경이었다.

JTBC 같은 매체는 백 선생님이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 바쳤다 했는데 반만 맞는 말이었다. 그는 1987년 이후엔 김영삼·김대중의 ‘민주화’나 그 586들의 ‘민주화’ 같은 걸 위해서 싸운 적 없다. 이번에 누군가가 SNS에 올려놓은 ‘1992년 대선 민중후보 자료집’에는 ‘독점재벌 해체 및 몰수, 기간산업 국유화, 노동자 자주관리’가 표제로 딱 박혀 있었다. 감당이 되나? 저 중에 지금 어떤 명제가 유효하며 유효하지 않나? 그 선거에서 ‘민중후보 백기완’은 1.0%를 득표했다.

매우 성찰적인 한 친구는 차마 조문을 못했다며 도치문으로 한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누가 남았지? 그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기만적인 내 삶을 부끄러워하고, 나 같은 누군가를 욕하고 오일장을 치르고 노제를 지내고, 당연히 그런 대접 해드려야 마땅한 어른이?” 실로 적실한 말이로다. 아, 큰 상실이다. 하나 그런 ‘어른’이 없어져서라기보다 현실이 더 송구스럽다. 어떤 면에서 노동운동은 ‘생활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시민운동은 문재인 정권 이후 주화입마에 빠져버렸다. 진보정당은 여전히 대중의 희망이 되긴 어설프고 작다. 나부터 그렇지만 먹물 든 자들은 거개 천하 좀생이가 돼 ‘성과’나 채우고 총장님·이사장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말길부터 음전하게 고른다. 부끄럽다.

‘노나메기’는커녕 복구 불가능해뵈는 불평등사회가 되고 있는데, 오늘도 수십수백억 재산 가진 부자들과 정치꾼들이 대거 나선 선거정치가 요란하다. 국민의힘 계통은 물론이지만 전대협 출신 권력자, 검찰 출신 금수저도 ‘백기완’과는 상극 아닌가?

역사를 보건대 백기완 같은 덩치가 등장하여 민중의 앞줄에서 고함치고 노래하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싹수를 꺾는 것, 혹 나오더라도 1%만 득표하게 쭈그러뜨리는 것, 이것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정치의 공통 이해본질 아닌가.



노제를 가봐도, 유튜브 영결식을 봐도 허전한 마음과 답답증이 잘 달래지지 않았는데, 동네 어귀 전자제품 AS센터 앞에서 위로를 받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 서울지회’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투쟁하자던 백기완 선생님의 외침을 기억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둔 것이었다. 21세기 ‘백기완’은 아마 어딘가에서 또 자라고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소시민들에게도 ‘백기완’을 발견하고 재평가할 임무가 있겠다. 백기완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문자들이 ‘노동해방’에 ‘김미숙, 김진숙 힘내라’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하고 싶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250300125&code=990100#csidxfd7ef4866756483b66a04a8d95ff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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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江村) /두보(杜甫)


淸江一曲抱村流, (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 한 구비 이 마을을 안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 (장하강촌사사유) 긴 여름 강촌에는 만사가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 (자거자래당상연) 절로 갔다 절로 오는 것은 들보 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 (상친상근수중구) 서로 친하고 서로 가까이하는 것은 물 위의 갈매기라.

老妻畵紙爲碁局, (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줄 그어 바둑판을 만들고,

稚子敲針作釣鉤. (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는구나.

多病所須唯藥物, (다병소수유약물) 병약한 몸에 필요한 것이라곤 그저 약물 뿐,

微軀此外更何求. (미구차외갱하구) 하찮은 이내 몸이 이 밖에 또 무엇을 바라리오.



화석정 / 율곡 이 이


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올라라.

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

바위 / 청마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든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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