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시아의 나스닥’ 된 대만 증시[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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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12-11 18:44 조회 200 댓글 0본문
타이베이 101 빌딩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펄럭이는 대만 국기. AP 뉴시스
계엄 혼란으로 한국 증시 시총이 대만에 크게 밀리게 됐다. 이런 기사 보셨나요. 지난 7일 블룸버그 기사를 국내 언론이 앞다퉈 전했는데요. 이를 두고 정치 때문에 경제가 폭망이라는 한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과연 정치만 문제일까요. 올해 초부터 줄곧 벌어지기만 하는 양국의 시총 격차는 두 나라 경제의 다른 운명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운이 아니라 명백한 실력 차이이죠. 잘 나가는 대만 경제와 증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잘 나가
대만 증시는 올해 들어 여러 기록을 썼습니다. 예를 들어
-3월 사상 처음으로 자취안 지수가 2만 포인트를 돌파했습니다.
-아시아 주요국 증시 중 올해 들어 지수 상승률이 가장 높습니다(30.35%).
-한국을 크게 제치고 아시아 국가 중 확고한 시가총액 3위로 올라섭니다.
한국과 대만의 시가총액 추이
사실 올 초만 해도 대만 증시는 좀 불안해 보였습니다. 1월 총통 선거에서 ‘친미반중’ 성향의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죠.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돼서 대만해협에서 뭔 일 일어나는 거 아니냐는 걱정 많았는데요. 하지만 중국이 지금 당장은 그럴 여력이 없죠. 경제 성장 둔화로 내부 챙기기에도 바쁘니까요. 많이들 우려했던(동시에 한국 증시는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지정학적 리스크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대신 미국 나스닥 발 인공지능(AI) 열풍이 대만 증시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듭니다. 대만 시총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기업 TSMC 주가가 올해 87%나 폭등했죠. 지난 7월엔 사상 처음으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는데요(이후 환율 변동 탓에 지금은 1조 달러를 하회). 9일 기준 TSMC 시총은 1234조원. 삼성전자(319조원)의 4배 가까이 됩니다. 2020년 이전만 해도 삼성전자가 더 앞섰는데. 씁쓸합니다.
아, 그럼 이게 다 TSMC 때문이네. 이렇게 생각하시겠죠?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대만엔 TSMC 말고도 든든한 AI 관련 기술주가 잔뜩 포진해 있죠. 반도체를 포함한 AI 생태계가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은 겁니다.
반도체 넘어 AI 생태계까지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대만에 데이터센터를 뒀거나 건설할 예정인 미국 빅테크이죠. 또 구글은 대만에 첨단 하드웨어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 중이고요. MS의 AI R&D센터, 마이크론 하이엔드 메모리 R&D센터도 대만에 있습니다. 엔비디아, AMD(GPU·CPU 세계 2위), ASML(반도체 장비업체), 슈퍼마이크로(AI 서버 전문 업체), 인피니언(자동차 반도체 세계 1위) 같은 내로라하는 기술기업 역시 R&D 센터를 짓고 있거나 짓는단 계획을 발표했고요.
올해 4월 구글이 대만에 두 번째로 연 하드웨어 R&D 사옥의 내부 모습. 구글이 2021년 대만에 첫 하드웨어 R&D 사옥을 완공한 뒤, 대만은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구글의 최대 하드웨어 R&D 거점이 됐다. 대만 구글 홈페이지
올해 4월 구글이 대만에 두 번째로 연 하드웨어 R&D 사옥의 내부 모습. 구글이 2021년 대만에 첫 하드웨어 R&D 사옥을 완공한 뒤, 대만은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구글의 최대 하드웨어 R&D 거점이 됐다. 대만 구글 홈페이지
아니,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나온 게 어제오늘 얘기가 아닌데. 왜 위험을 무릅쓰고 대만을 연구개발 기지로 택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필요한 게 대만에 다 모여 있으니까요. 첨단 AI 반도체 제조와 서버 구축, 장치 냉각 등 거의 모든 가치사슬이 말이죠. 예를 들면 지금 대만 증시에서 잘 나가는 AI 관련 기업은 이런 곳이 있습니다.
폭스콘(Foxconn) : 애플 아이폰 제조로 알려진 기업이죠. AI 서버 수요가 급증하면서 올해 사상 최고 기록을 달성하고 있는데요. 멕시코에 최신 엔비디아 AI 가속기 ‘GB200‘ 생산시설도 짓고 있습니다. 올해 주가 상승률 86%.
퀀타 컴퓨터(Quanta Computer) : 원래 애플 맥북 제조사로 유명한데요. 최근엔 AI 서버를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 퀀타 클라우드 테크놀로지(QCT, 엔비디아 주요 협력사)로 더 유명합니다. 폭스콘과 경쟁 관계에 있죠. 2023년 주가가 약 160% 뛰었고, 올해도 38% 더 올랐습니다.
대만의 대표적 전자회사 퀀타 컴퓨터 사옥의 모습. 이젠 맥북보다 AI 서버로 유명하다. 퀀타 컴퓨터 홈페이지
대만의 대표적 전자회사 퀀타 컴퓨터 사옥의 모습. 이젠 맥북보다 AI 서버로 유명하다. 퀀타 컴퓨터 홈페이지
델타 일렉트로닉스(Delta Electronics) : AI 서버용 전원공급장치와 열을 시켜주는 냉각 솔루션을 만드는 기업입니다. 역시 엔비디아 협력업체이죠. 전력 손실을 크게 줄이는 기술에서 특히 주목받습니다. 이전엔 전기차 전력 공급으로 유명했지만, 이제 AI 관련주로 변신하면서 주가 상승세가 이어집니다. 올해 주가 상승률은 31%.
아시아 바이탈 컴포넌트(Asia Vital Components) : GPU 액체 냉각을 위해 필요한 구리로 된 콜드플레이트(Cold Plate, 발열을 흡수하는 역할)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냉각 방식이 액체 냉각으로 진화하는 트렌드의 최대 수혜주로 평가되죠. 올해 주가가 115% 급등했습니다.
이름이 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AI 가속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B2B 기업들입니다. 여기에 수백개의 반도체 디자인 회사와 세계 최고 패키징 기업(ASE)을 포함한 완성된 반도체 공급망도 대만엔 있죠. 엔비디아는 물론 MS와 구글 등 AI 선두기업이 이 작은 섬나라로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합니다. 류페이 첸 대만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만은 AI 관련 하드웨어의 원스톱 샵입니다.”
아시아 실리콘밸리라는 꿈
물론 이런 AI 생태계 구축은 대만의 민간 기업끼리 서로 밀고 끌어줬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TSMC가 엔비디아의 공급망 선정에 영향을 줬으리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죠. 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나 리사 수 AMD CEO 같은 대만계 IT 거물의 영향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 역할을 무시할 수 없죠. 사실 대만 반도체 산업은 태생 자체가 정부 작품이었죠. TSMC가 1987년 국영기업으로 출발했으니까요(1992년 민영화). 또 정부는 부지 개발을 직접 한 ‘과학산업단지’(신주, 중부, 남부 3개 권역) 공장을 반도체 기업에 싸게 빌려줬습니다. 기업은 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까이에 서로 모여 있으면서 시너지를 내게 한 거죠. 이토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건 반도체가 국가 안보를 지켜줄 ‘방패’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는데요. TSMC가 호국신산(護國神山, 나라를 지키는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대만에서 ‘호국신산’으로 불리는 TSMC. TSMC 홈페이지
대만에서 ‘호국신산’으로 불리는 TSMC. TSMC 홈페이지
하지만 이런 대만 경제도 2010년 전후로는 많이 헤맸습니다. 과거 대만 경제 기적을 이끌었던 OEM(주문자 생산방식) 경제성장 모델이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죠. 저가 PC 조립 같은 OEM만 하다 보니 원천 기술이 대만엔 남지 않았고요.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기업들이 하나둘 빠져나간 겁니다.
2016년 집권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은 ‘아시아 실리콘밸리 계획’을 발표합니다. ‘OEM 경제에서 기술 혁신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혁신기업과 인재를 육성한다는 계획이었죠. 첨단 반도체 제조 인프라 기반에 AI 같은 미래 기술을 융합시키자는 야심 찬 그림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실현 불가능한 ‘돈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전략을 주도할 디지털 장관엔 ‘화이트 해커’ 출신인 오드리 탕을 임명했죠. 당시 35세였던 최연소 장관이자 첫 트랜스젠더 장관이라 파격적이었는데요. 그만큼 규제완화와 혁신에 진심이란 걸 보여준 겁니다. 그는 올해 5월까지 무려 8년이나 자리를 지킵니다.
기술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규제완화와 투자지원이 본격화했고요. R&D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정에 대한 보조금 확대와 화끈한 세금 감면, 외국 인재 유치(소득세 혜택 주는 취업 골든카드 비자 발급), 반도체연구학과 설립 같은 대대적인 지원 정책이 펼쳐집니다.
마침 타이밍도 좋았습니다. 트럼프 집권 뒤 미·중 갈등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고,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으니까요. 2018년부터 MS와 구글 같은 빅테크가 ‘대만을 AI 연구 허브로 만들겠다’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왜 굳이 대만까지 오겠어?’라던 회의론을 보란 듯이 뒤집은 거죠. 대만 정부 설명대로 “보조금, 인재, 세금(감면)”이란 세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한국과는 뭐가 달랐나
그런데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AI 육성, 그거 우리나라도 참 많이 했던 얘기인데. 2016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간중심 AI 육성’ 외쳤고요. 2019년 말 문재인 전 대통령은 ‘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라며 비전 발표했거든요. 게다가 올해 9월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식도 열렸습니다. AI를 본격적으로 외치기 시작한 시점은 대만과 별 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달랐던 걸까요. 사실 이유야 수도 없이 많지만요. 굳이 꼽자면 일단 반도체와 AI 아니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지정학적 위기에 처한 대만보다 약했다고 봅니다. 또 정권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정책을 이어나갈 동력을 잃고 리셋 되어버렸고요. 헤쳐 나갈 의지와 에너지 모두 부족했던 건데요. 그러다 보니 발표해 놓은 각종 지원 정책도 흐지부지됐고요. 반도체 산업 주도권이 정부보단 민간 대기업에 있다 보니, 중소기업까지 키우진 못했죠.(삼일PwC경영연구원 ‘K-반도체 레벨업 방안’ 보고서 참고)
한편 올 5월 취임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대만을 실리콘(반도체) 섬에서 AI 섬으로 변모시키겠습니다.” 기존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겠단 점을 분명히 한 건데요. 이제 AI는 대만에서 (반도체에 이어) “국가를 보호해 줄 두 번째 산”으로 불립니다.
대만의 AI 강국 스토리에도 틈은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근로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요. 두둑한 보너스로 부유해진 IT업계 종사자와 다른 업종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죠. 물론 대만 경제는 성장의 페달을 열심히 밟아서 파이를 더 키우는 데 주력할 겁니다. 대만 정부가 내놓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29%. 한국의 내년 성장률 예상치(투자은행 평균 1.8%)를 한참 웃돕니다. By.딥다이브
대만 증시에 투자자가 몰리는 데는 AI 열풍과 함께 상장사의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배당 비율)이 매우 높다(10년 평균 60%)는 이유도 작용하죠. 그것 또한 부러운 점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만과 한국의 시총 격차가 갈수록 벌어집니다. 대만 증시는 펄펄 나는데, 한국은 고꾸라지는 탓이죠. TSMC를 필두로 한 대만 AI 생태계가 무섭게 성장 중입니다. 첨단 반도체 제조부터 서버 구축, 냉각까지. 대만은 AI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대만 기술 산업은 정부 주도로 키워졌습니다. OEM 경제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6년부터 ‘아시아 실리콘밸리’ 계획을 펼쳤죠. 보조금 지급+인재 양성+세금 감면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데다, 미·중 무역 갈등이 기회로 작용하면서 대만이 아시아 AI 허브로 급부상합니다.
-2016년 알파고 대국의 충격 이후 AI 육성을 외쳐왔지만 별소득이 없는 한국. 지금이라도 각성이 필요할 텐데, 나라가 이리도 혼란스러우니 걱정입니다.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시아의 나스닥’ 된 대만 증시
계엄 혼란으로 한국 증시 시총이 대만에 크게 밀리게 됐다. 이런 기사 보셨나요. 지난 7일 블룸버그 기사를 국내 언론이 앞다퉈 전했는데요. 이를 두고 정치 때문에 경제가 폭망이라는 한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과연 정치만 문제일까요. 올해 초부터 줄곧 벌어지기만 하는 양국의 시총 격차는 두 나라 경제의 다른 운명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운이 아니라 명백한 실력 차이이죠. 잘 나가는 대만 경제와 증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잘 나가
대만 증시는 올해 들어 여러 기록을 썼습니다. 예를 들어
-3월 사상 처음으로 자취안 지수가 2만 포인트를 돌파했습니다.
-아시아 주요국 증시 중 올해 들어 지수 상승률이 가장 높습니다(30.35%).
-한국을 크게 제치고 아시아 국가 중 확고한 시가총액 3위로 올라섭니다.
한국과 대만의 시가총액 추이
사실 올 초만 해도 대만 증시는 좀 불안해 보였습니다. 1월 총통 선거에서 ‘친미반중’ 성향의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죠.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돼서 대만해협에서 뭔 일 일어나는 거 아니냐는 걱정 많았는데요. 하지만 중국이 지금 당장은 그럴 여력이 없죠. 경제 성장 둔화로 내부 챙기기에도 바쁘니까요. 많이들 우려했던(동시에 한국 증시는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지정학적 리스크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대신 미국 나스닥 발 인공지능(AI) 열풍이 대만 증시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듭니다. 대만 시총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기업 TSMC 주가가 올해 87%나 폭등했죠. 지난 7월엔 사상 처음으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는데요(이후 환율 변동 탓에 지금은 1조 달러를 하회). 9일 기준 TSMC 시총은 1234조원. 삼성전자(319조원)의 4배 가까이 됩니다. 2020년 이전만 해도 삼성전자가 더 앞섰는데. 씁쓸합니다.
아, 그럼 이게 다 TSMC 때문이네. 이렇게 생각하시겠죠?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대만엔 TSMC 말고도 든든한 AI 관련 기술주가 잔뜩 포진해 있죠. 반도체를 포함한 AI 생태계가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은 겁니다.
반도체 넘어 AI 생태계까지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대만에 데이터센터를 뒀거나 건설할 예정인 미국 빅테크이죠. 또 구글은 대만에 첨단 하드웨어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 중이고요. MS의 AI R&D센터, 마이크론 하이엔드 메모리 R&D센터도 대만에 있습니다. 엔비디아, AMD(GPU·CPU 세계 2위), ASML(반도체 장비업체), 슈퍼마이크로(AI 서버 전문 업체), 인피니언(자동차 반도체 세계 1위) 같은 내로라하는 기술기업 역시 R&D 센터를 짓고 있거나 짓는단 계획을 발표했고요.
올해 4월 구글이 대만에 두 번째로 연 하드웨어 R&D 사옥의 내부 모습. 구글이 2021년 대만에 첫 하드웨어 R&D 사옥을 완공한 뒤, 대만은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구글의 최대 하드웨어 R&D 거점이 됐다. 대만 구글 홈페이지
올해 4월 구글이 대만에 두 번째로 연 하드웨어 R&D 사옥의 내부 모습. 구글이 2021년 대만에 첫 하드웨어 R&D 사옥을 완공한 뒤, 대만은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구글의 최대 하드웨어 R&D 거점이 됐다. 대만 구글 홈페이지
아니,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나온 게 어제오늘 얘기가 아닌데. 왜 위험을 무릅쓰고 대만을 연구개발 기지로 택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필요한 게 대만에 다 모여 있으니까요. 첨단 AI 반도체 제조와 서버 구축, 장치 냉각 등 거의 모든 가치사슬이 말이죠. 예를 들면 지금 대만 증시에서 잘 나가는 AI 관련 기업은 이런 곳이 있습니다.
폭스콘(Foxconn) : 애플 아이폰 제조로 알려진 기업이죠. AI 서버 수요가 급증하면서 올해 사상 최고 기록을 달성하고 있는데요. 멕시코에 최신 엔비디아 AI 가속기 ‘GB200‘ 생산시설도 짓고 있습니다. 올해 주가 상승률 86%.
퀀타 컴퓨터(Quanta Computer) : 원래 애플 맥북 제조사로 유명한데요. 최근엔 AI 서버를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 퀀타 클라우드 테크놀로지(QCT, 엔비디아 주요 협력사)로 더 유명합니다. 폭스콘과 경쟁 관계에 있죠. 2023년 주가가 약 160% 뛰었고, 올해도 38% 더 올랐습니다.
대만의 대표적 전자회사 퀀타 컴퓨터 사옥의 모습. 이젠 맥북보다 AI 서버로 유명하다. 퀀타 컴퓨터 홈페이지
대만의 대표적 전자회사 퀀타 컴퓨터 사옥의 모습. 이젠 맥북보다 AI 서버로 유명하다. 퀀타 컴퓨터 홈페이지
델타 일렉트로닉스(Delta Electronics) : AI 서버용 전원공급장치와 열을 시켜주는 냉각 솔루션을 만드는 기업입니다. 역시 엔비디아 협력업체이죠. 전력 손실을 크게 줄이는 기술에서 특히 주목받습니다. 이전엔 전기차 전력 공급으로 유명했지만, 이제 AI 관련주로 변신하면서 주가 상승세가 이어집니다. 올해 주가 상승률은 31%.
아시아 바이탈 컴포넌트(Asia Vital Components) : GPU 액체 냉각을 위해 필요한 구리로 된 콜드플레이트(Cold Plate, 발열을 흡수하는 역할)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냉각 방식이 액체 냉각으로 진화하는 트렌드의 최대 수혜주로 평가되죠. 올해 주가가 115% 급등했습니다.
이름이 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AI 가속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B2B 기업들입니다. 여기에 수백개의 반도체 디자인 회사와 세계 최고 패키징 기업(ASE)을 포함한 완성된 반도체 공급망도 대만엔 있죠. 엔비디아는 물론 MS와 구글 등 AI 선두기업이 이 작은 섬나라로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합니다. 류페이 첸 대만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만은 AI 관련 하드웨어의 원스톱 샵입니다.”
아시아 실리콘밸리라는 꿈
물론 이런 AI 생태계 구축은 대만의 민간 기업끼리 서로 밀고 끌어줬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TSMC가 엔비디아의 공급망 선정에 영향을 줬으리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죠. 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나 리사 수 AMD CEO 같은 대만계 IT 거물의 영향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 역할을 무시할 수 없죠. 사실 대만 반도체 산업은 태생 자체가 정부 작품이었죠. TSMC가 1987년 국영기업으로 출발했으니까요(1992년 민영화). 또 정부는 부지 개발을 직접 한 ‘과학산업단지’(신주, 중부, 남부 3개 권역) 공장을 반도체 기업에 싸게 빌려줬습니다. 기업은 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까이에 서로 모여 있으면서 시너지를 내게 한 거죠. 이토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건 반도체가 국가 안보를 지켜줄 ‘방패’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는데요. TSMC가 호국신산(護國神山, 나라를 지키는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대만에서 ‘호국신산’으로 불리는 TSMC. TSMC 홈페이지
대만에서 ‘호국신산’으로 불리는 TSMC. TSMC 홈페이지
하지만 이런 대만 경제도 2010년 전후로는 많이 헤맸습니다. 과거 대만 경제 기적을 이끌었던 OEM(주문자 생산방식) 경제성장 모델이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죠. 저가 PC 조립 같은 OEM만 하다 보니 원천 기술이 대만엔 남지 않았고요.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기업들이 하나둘 빠져나간 겁니다.
2016년 집권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은 ‘아시아 실리콘밸리 계획’을 발표합니다. ‘OEM 경제에서 기술 혁신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혁신기업과 인재를 육성한다는 계획이었죠. 첨단 반도체 제조 인프라 기반에 AI 같은 미래 기술을 융합시키자는 야심 찬 그림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실현 불가능한 ‘돈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전략을 주도할 디지털 장관엔 ‘화이트 해커’ 출신인 오드리 탕을 임명했죠. 당시 35세였던 최연소 장관이자 첫 트랜스젠더 장관이라 파격적이었는데요. 그만큼 규제완화와 혁신에 진심이란 걸 보여준 겁니다. 그는 올해 5월까지 무려 8년이나 자리를 지킵니다.
기술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규제완화와 투자지원이 본격화했고요. R&D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정에 대한 보조금 확대와 화끈한 세금 감면, 외국 인재 유치(소득세 혜택 주는 취업 골든카드 비자 발급), 반도체연구학과 설립 같은 대대적인 지원 정책이 펼쳐집니다.
마침 타이밍도 좋았습니다. 트럼프 집권 뒤 미·중 갈등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고,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으니까요. 2018년부터 MS와 구글 같은 빅테크가 ‘대만을 AI 연구 허브로 만들겠다’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왜 굳이 대만까지 오겠어?’라던 회의론을 보란 듯이 뒤집은 거죠. 대만 정부 설명대로 “보조금, 인재, 세금(감면)”이란 세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한국과는 뭐가 달랐나
그런데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AI 육성, 그거 우리나라도 참 많이 했던 얘기인데. 2016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간중심 AI 육성’ 외쳤고요. 2019년 말 문재인 전 대통령은 ‘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라며 비전 발표했거든요. 게다가 올해 9월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식도 열렸습니다. AI를 본격적으로 외치기 시작한 시점은 대만과 별 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달랐던 걸까요. 사실 이유야 수도 없이 많지만요. 굳이 꼽자면 일단 반도체와 AI 아니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지정학적 위기에 처한 대만보다 약했다고 봅니다. 또 정권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정책을 이어나갈 동력을 잃고 리셋 되어버렸고요. 헤쳐 나갈 의지와 에너지 모두 부족했던 건데요. 그러다 보니 발표해 놓은 각종 지원 정책도 흐지부지됐고요. 반도체 산업 주도권이 정부보단 민간 대기업에 있다 보니, 중소기업까지 키우진 못했죠.(삼일PwC경영연구원 ‘K-반도체 레벨업 방안’ 보고서 참고)
한편 올 5월 취임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대만을 실리콘(반도체) 섬에서 AI 섬으로 변모시키겠습니다.” 기존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겠단 점을 분명히 한 건데요. 이제 AI는 대만에서 (반도체에 이어) “국가를 보호해 줄 두 번째 산”으로 불립니다.
대만의 AI 강국 스토리에도 틈은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근로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요. 두둑한 보너스로 부유해진 IT업계 종사자와 다른 업종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죠. 물론 대만 경제는 성장의 페달을 열심히 밟아서 파이를 더 키우는 데 주력할 겁니다. 대만 정부가 내놓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29%. 한국의 내년 성장률 예상치(투자은행 평균 1.8%)를 한참 웃돕니다. By.딥다이브
대만 증시에 투자자가 몰리는 데는 AI 열풍과 함께 상장사의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배당 비율)이 매우 높다(10년 평균 60%)는 이유도 작용하죠. 그것 또한 부러운 점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만과 한국의 시총 격차가 갈수록 벌어집니다. 대만 증시는 펄펄 나는데, 한국은 고꾸라지는 탓이죠. TSMC를 필두로 한 대만 AI 생태계가 무섭게 성장 중입니다. 첨단 반도체 제조부터 서버 구축, 냉각까지. 대만은 AI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대만 기술 산업은 정부 주도로 키워졌습니다. OEM 경제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6년부터 ‘아시아 실리콘밸리’ 계획을 펼쳤죠. 보조금 지급+인재 양성+세금 감면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데다, 미·중 무역 갈등이 기회로 작용하면서 대만이 아시아 AI 허브로 급부상합니다.
-2016년 알파고 대국의 충격 이후 AI 육성을 외쳐왔지만 별소득이 없는 한국. 지금이라도 각성이 필요할 텐데, 나라가 이리도 혼란스러우니 걱정입니다.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시아의 나스닥’ 된 대만 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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