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에서 통일의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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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무트 코쉭
1990년의 개혁은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다페스트와 바르샤바 그리고 프라하의 독일 대사관으로 몰려
간 망명자들이 연출한 드라마와 헝가리 국경의 개방, 대규모 월요시
위, 장벽의 붕괴, 1932년 이후 동독 지역에서 시행된 최초의 진정한
자유선거, 옛 독일 주들의 부흥, 독일 통일에 대한 양 독일과 국제사
회 간의 협의, 1990년 10월 3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감동적
인 통일축제로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에게 영예를 안겨주었다.
나는 그날 베를린에서부터 전해온 장면을 회상한다. 10월 2일에서
3일로 넘어가는 밤이었다. 제국의사당 건물 앞에 서 있던 군중과 자
정이 되기 전 고조된 긴장감, 자유를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우리 시
대의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 응집력이 그 장면들이다. 나는 지금도 감
사의 마음으로 충만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인 1989년 11월 9일 역시 잊을 수 없는 날
이다. 그날 나는 당시의 수도인 본에 있었는데 연방의회 의원인 친구
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얼른 텔레비전을 켜
봐!” 내가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화면에 귄터 샤보브스키가 기자회견
을 하는 장면이 중개되고 있었다. 독일 통일사회당 의원인 그는 동독
의 여행자유화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장벽이 무
너지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와 법치국가
를 실현할 수 있음을 1989년 11월 9일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임진 씨가 발간한 이 책에서 독일의 분단 시절과 통일을 몸소 체험
한 증언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시대의 증언자
들이 들려주는 회고를 통해서도 독일 통일이 국민들의 삶에 얼마나
결정적인 사건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입증하고 있다.
중부 및 동부 유럽의 자유화와 독일의 통일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회원국 국민들이 공산주의 독재에 두려워하지 않고 대항했던 그 용기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가 발기한 폴란드 독립 자유 노동조합 연대인 솔리다르노시치는 동
유럽에서 최초로 비인간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진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동독에서 탈출해 온 망명자들을 시
위적으로 보여주며 바츨라프 하벨이 이끄는 ‘벨벳 혁명’을 통해 ‘화합과
정의와 자유’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오스트리아와 접하는 국경을
개방해 동독 망명자들이 연방 독일로 갈 수 있도록 협조한 헝가리 정
부는 철의 장막을 ‘녹슬게’ 하는 소인을 찍는 역할을 했다.
그 시대에 동독 출신의 시민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정치의 길로 접
어들었다. 현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은 당시 새로이 결성된 정치단체
인 민주개혁(DA, Demokratischer Aufbruch)의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
문했고 이후 동독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행된 민주선거에 의
해 수립된 정부의 대변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용기 있는 동독의 시민들 중 다수가 기독교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1989년 가을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장을
요구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이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유혈 진압되었던 사건이 불과 몇 주 전에 발생한 상황에서 시위는 위
험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았다.
동독의 반체제인사들과 시위자들이 행한 운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노력이 없이는 베를린 장벽의 붕
괴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룩한 역사적 업적은 평화혁
명이었다. 마찬가지로 전후 세대인 우리 독일인 모두는 국가 재건과
경제 기적, 법치국가 그리고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는 것에
긍지를 지니고 있다.
한반도 민족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 반드시 온다
40년 동안이라는 분단의 역사를 지닌 독일은 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또한 28년 만에 허물어진 베를린 장벽과 동독에서의 평화혁명
후 분단을 극복한 독일은 여전히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반
도에서 한독 유대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3월 독일을 방문했을 당
시 한국과 독일 사이에는 “분단이라는 아픈 경험 때문에 특별한 유대
감이 조성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을 “한반도의 평
화적 통일을 위한 이상형”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은 독일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에 적
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통일 외교 측면과 경제 통합의
문제에 대한 교류를 심화하겠다는 협의도 이루어졌다. 독일 통일 20
주년을 기해 양측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설치되어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정보와 학문적 지식을 교환하고 있고 한반도 통일 정책
을 위해 활용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1990년 10월 3일, 그러니까 24년 전에 우리에게 국가적 차원의 염
원 한 가지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위한 단 한 번의 기회
가 주어졌었다. 이 역사가 두 나라를 연결하는 것은 한국 역시 10월 3
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한민족 최초의 건국을 기리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기원전 2333년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이 ‘단군’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 날에 대한 한국어 이름
을 직역하면 ‘하늘이 열린 날’이다. 단군에 의한 건국뿐 아니라 기원전
2457년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 문을 열고 내려온 날을 기리는 것이
고 지금은 민족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긍지를 되새기는 날로
기념하고 있다고 안다.
나는 한반도의 민족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과
단군 정신을 본받아 화합과 평화, 자유 안에서 자치적인 결정권을 갖
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어쩌면 예상보다 더 빨리 찾아올 수
도 있다. 1989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 독일인들뿐 아니라 세상의 그 누
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불과 몇 개월 후에 베를린에서 장벽이 무
너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독일은 1990년 10월 통일이 되었다.
우리 두 국가가 10월 3일을 통일을 상징하는 날로 함께 경축할 날이
올 것이다. 이 책에서 회고되는 독일의 분단과 통일은 한국인들에게
통일된 한반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
다. 독일의 통일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있다. 인내력이 없고 확신이
없는 사람은 조국의 통일과 같은 위대하고 멋진 프로젝트를 절대 수
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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