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는 윤 대통령에겐 ‘벼랑 끝 기회’…권력 나누는 대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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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4-14 11:52 조회 1,872 댓글 0본문
1997년 11월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디제이피(DJP) 연합 합의문’을 교환하며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법안 통과-거부권 행사 ‘악순환’
‘식물 대통령’ 국정 마비 불 보듯
큰 틀의 정치구조 전환 필요한 때
야당과 ‘3대 개혁 연정’ 구성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선거 결과는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입니다.
4년 전인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으로 압승했습니다. 2년 전인 2022년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주권자의 명령은 ‘국회는 민주당이 다수지만 대통령은 윤석열을 시킬 테니 국회와 대통령은 협력해서 국정을 잘 끌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싫다고 도리질을 쳤습니다. ‘국회 권력까지 몰아줘야 대통령을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화가 난 주권자가 22대 총선을 통해 다시 내린 명령은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국정을 끌어가라고 했는데 도대체 왜 말을 안 듣느냐’는 준엄한 질책이었습니다. 4·10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윤석열 대통령에 의한, 윤석열 대통령을 위한’ 선거였습니다.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정권심판론을 다른 사람이 아닌 윤 대통령 자신이 총선 쟁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도주 대사’ 비술과 ‘대파 875원’ 신공으로 말입니다. 총선 참패의 책임은 윤 대통령이 100% 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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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
선거 결과를 놓고 두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철회론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2022년 3월9일 윤 대통령 선출을 사실상 철회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강경파의 주장입니다. 철회론이 옳다면 윤 대통령은 사퇴해야 합니다.
둘째, 기회론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신을 차리고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한번 더 기회를 준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국민의힘 지지층과 이른바 보수 세력의 해석입니다. 기회론이 옳다면 윤 대통령은 변화해야 합니다.
선거 다음날 동아일보는 ‘유례없는 여(與) 참패…국민은 윤(尹) 대통령을 매섭게 질책했다―불통과 독선 끝내고 소통과 협치하라는 명령’이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불통’ ‘독선’을 버리고 ‘소통’ ‘협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자존심과 “정무 감각은 꽝”이라는 우직함으로 검찰총장이 됐습니다. 자존심은 불통입니다. 우직함은 독선입니다. 불통과 독선은 어쩌면 검사의 장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 특히 대통령에게는 치명적 단점입니다. 윤 대통령은 무척 억울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하던 대로 하는 건데 왜 나만 미워하냐’고 항변하고 싶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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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윤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은 그의 잘못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평생 검사만 하던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밀어 올린 우리 모두의 잘못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올 것인지, 아니면 크게 변화할 것인지는 윤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소통과 협치는 국회와 정당 경험을 오랫동안 쌓은 정치인들의 덕목입니다. 윤 대통령에게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아니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일 수 있습니다. 정치의 큰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당선됐습니다. 그가 처했던 정치 환경은 윤 대통령과 비슷했습니다.
“취임하고 보니 국회는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장악한 여소야대 국회였다. 그래도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부지런히 만났지만 쉽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나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완연했다. (…) 해가 바뀌어 2004년이 왔지만, 총선 전망은 지극히 어두웠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는 고사하고 제1당이 될 가능성도 전혀 없었다. 커다란 위기였다. 나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탐색했다. 그것이 프랑스식 동거정부 또는 책임총리제였다. 다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지면 총리를 국회의 다수연합이 추천하게 하고 내각을 지휘할 실질적 권한을 주는 것이다. 거저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식 국회의원 선거제도 또는 중대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을 조건으로 하려 했다.”(2010, ‘운명이다―노무현 자서전’)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습니다.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2005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해 다시 여소야대가 됐습니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카드를 꺼냈습니다. 진정성을 의심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과 노 대통령 지지자들까지 반대했습니다. 실패였습니다. 선각자는 광인 취급을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봅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20년이 지났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참패한 윤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을 돌파구로 삼으면 어떨까요? 왜냐고요? 이번 총선 결과 의석은 절묘한 데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175석과 조국혁신당 12석을 합치면 187석입니다. 정부·여당은 민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도 제동이 걸립니다. 국회는 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원장·대법관 등에 대한 임명동의를 반대하거나, 탄핵소추로 장관이나 판검사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국정을 마음대로 끌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손잡으면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통과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할 수는 없습니다. 187석으로는 개헌도 할 수 없고 대통령 탄핵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동안 지겹게 반복됐던 야당 법안 강행 처리,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정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임기 3년이 남은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절반만 갖는 것도 방법입니다.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대연정을 하면 어떨까요? 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는 노동·교육·연금 개혁입니다. 민주당도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다음 대선 때까지 한시적으로 ‘3대 개혁을 위한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연정은 정체성이 전혀 다른 정당들이 공동으로 정권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요? 가능합니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대선 후보를 김대중 총재로 단일화하고, 집권 시 실질적인 각료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갖는 실세 총리는 자민련 측에서 맡도록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디제이피(DJP) 연합입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
“당시 우리는 자민련과 후보 단일화 협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재야 민주화운동 출신들의 반발과 비판이 있었다. 당내에서는 김근태씨 등 재야 출신 소장 의원들이, 당 밖에서는 종교계 인사들이 반발했다. 나는 이런 반발에 ‘색깔론 망령’과 3당 합당 이후 강화된 호남 고립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자민련과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 과거에 대립했던 세력과의 연합에 거부감이 있겠지만, 현실 정치에서 소신과 명분 못지않게 현실적 선택도 중요하다는 것을 얘기했다.”(2011, ‘김대중 자서전’)
대선에서 이긴 두 정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12명씩 똑같이 임명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에는 약속대로 김종필 총재가 국무총리를 맡았습니다. 장관도 절반씩 나눴습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강창희 과학기술부 장관,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 최재욱 환경부 장관,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 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자민련 몫이었습니다. 디제이피 연정은 외환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9월 한나라당의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자민련이 가세할 때까지 유지됐습니다. 만약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연정이 성사된다면 윤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장관직 절반을 민주당에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1998년처럼 말입니다.
대연정은 무엇보다도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 지수가 점점 높아가는 미국·영국·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 지수가 점점 낮아지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정치학자들은 대연정 경험 덕분이라고 분석합니다. 우리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연정이 성사되면 두 정당 지지자들의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대연정과 동시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함께 개헌을 추진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고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 2026년부터 대선 및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2년마다 엇갈려 치르도록 주기를 맞출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존의 지혜를 깨달을 때도 됐습니다. 상대 정당과 지지자들이 아무리 미워도 그들을 이 땅에서 다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가장 중요합니다. 총선 참패 직후인 지금은 오롯이 윤 대통령의 시간입니다. 권력을 나누지 않으면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정치는 발전할 수도 있고, 퇴행할 수도 있습니다. 통합할 수도 있고, 분열할 수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안 통과-거부권 행사 ‘악순환’
‘식물 대통령’ 국정 마비 불 보듯
큰 틀의 정치구조 전환 필요한 때
야당과 ‘3대 개혁 연정’ 구성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선거 결과는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입니다.
4년 전인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으로 압승했습니다. 2년 전인 2022년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주권자의 명령은 ‘국회는 민주당이 다수지만 대통령은 윤석열을 시킬 테니 국회와 대통령은 협력해서 국정을 잘 끌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싫다고 도리질을 쳤습니다. ‘국회 권력까지 몰아줘야 대통령을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화가 난 주권자가 22대 총선을 통해 다시 내린 명령은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국정을 끌어가라고 했는데 도대체 왜 말을 안 듣느냐’는 준엄한 질책이었습니다. 4·10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윤석열 대통령에 의한, 윤석열 대통령을 위한’ 선거였습니다.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정권심판론을 다른 사람이 아닌 윤 대통령 자신이 총선 쟁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도주 대사’ 비술과 ‘대파 875원’ 신공으로 말입니다. 총선 참패의 책임은 윤 대통령이 100% 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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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
선거 결과를 놓고 두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철회론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2022년 3월9일 윤 대통령 선출을 사실상 철회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강경파의 주장입니다. 철회론이 옳다면 윤 대통령은 사퇴해야 합니다.
둘째, 기회론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신을 차리고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한번 더 기회를 준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국민의힘 지지층과 이른바 보수 세력의 해석입니다. 기회론이 옳다면 윤 대통령은 변화해야 합니다.
선거 다음날 동아일보는 ‘유례없는 여(與) 참패…국민은 윤(尹) 대통령을 매섭게 질책했다―불통과 독선 끝내고 소통과 협치하라는 명령’이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불통’ ‘독선’을 버리고 ‘소통’ ‘협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자존심과 “정무 감각은 꽝”이라는 우직함으로 검찰총장이 됐습니다. 자존심은 불통입니다. 우직함은 독선입니다. 불통과 독선은 어쩌면 검사의 장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 특히 대통령에게는 치명적 단점입니다. 윤 대통령은 무척 억울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하던 대로 하는 건데 왜 나만 미워하냐’고 항변하고 싶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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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윤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은 그의 잘못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평생 검사만 하던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밀어 올린 우리 모두의 잘못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올 것인지, 아니면 크게 변화할 것인지는 윤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소통과 협치는 국회와 정당 경험을 오랫동안 쌓은 정치인들의 덕목입니다. 윤 대통령에게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아니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일 수 있습니다. 정치의 큰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당선됐습니다. 그가 처했던 정치 환경은 윤 대통령과 비슷했습니다.
“취임하고 보니 국회는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장악한 여소야대 국회였다. 그래도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부지런히 만났지만 쉽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나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완연했다. (…) 해가 바뀌어 2004년이 왔지만, 총선 전망은 지극히 어두웠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는 고사하고 제1당이 될 가능성도 전혀 없었다. 커다란 위기였다. 나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탐색했다. 그것이 프랑스식 동거정부 또는 책임총리제였다. 다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지면 총리를 국회의 다수연합이 추천하게 하고 내각을 지휘할 실질적 권한을 주는 것이다. 거저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식 국회의원 선거제도 또는 중대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을 조건으로 하려 했다.”(2010, ‘운명이다―노무현 자서전’)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습니다.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2005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해 다시 여소야대가 됐습니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카드를 꺼냈습니다. 진정성을 의심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과 노 대통령 지지자들까지 반대했습니다. 실패였습니다. 선각자는 광인 취급을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봅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20년이 지났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참패한 윤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을 돌파구로 삼으면 어떨까요? 왜냐고요? 이번 총선 결과 의석은 절묘한 데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175석과 조국혁신당 12석을 합치면 187석입니다. 정부·여당은 민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도 제동이 걸립니다. 국회는 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원장·대법관 등에 대한 임명동의를 반대하거나, 탄핵소추로 장관이나 판검사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국정을 마음대로 끌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손잡으면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통과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할 수는 없습니다. 187석으로는 개헌도 할 수 없고 대통령 탄핵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동안 지겹게 반복됐던 야당 법안 강행 처리,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정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임기 3년이 남은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절반만 갖는 것도 방법입니다.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대연정을 하면 어떨까요? 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는 노동·교육·연금 개혁입니다. 민주당도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다음 대선 때까지 한시적으로 ‘3대 개혁을 위한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연정은 정체성이 전혀 다른 정당들이 공동으로 정권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요? 가능합니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대선 후보를 김대중 총재로 단일화하고, 집권 시 실질적인 각료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갖는 실세 총리는 자민련 측에서 맡도록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디제이피(DJP) 연합입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
“당시 우리는 자민련과 후보 단일화 협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재야 민주화운동 출신들의 반발과 비판이 있었다. 당내에서는 김근태씨 등 재야 출신 소장 의원들이, 당 밖에서는 종교계 인사들이 반발했다. 나는 이런 반발에 ‘색깔론 망령’과 3당 합당 이후 강화된 호남 고립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자민련과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 과거에 대립했던 세력과의 연합에 거부감이 있겠지만, 현실 정치에서 소신과 명분 못지않게 현실적 선택도 중요하다는 것을 얘기했다.”(2011, ‘김대중 자서전’)
대선에서 이긴 두 정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12명씩 똑같이 임명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에는 약속대로 김종필 총재가 국무총리를 맡았습니다. 장관도 절반씩 나눴습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강창희 과학기술부 장관,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 최재욱 환경부 장관,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 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자민련 몫이었습니다. 디제이피 연정은 외환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9월 한나라당의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자민련이 가세할 때까지 유지됐습니다. 만약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연정이 성사된다면 윤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장관직 절반을 민주당에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1998년처럼 말입니다.
대연정은 무엇보다도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 지수가 점점 높아가는 미국·영국·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 지수가 점점 낮아지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정치학자들은 대연정 경험 덕분이라고 분석합니다. 우리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연정이 성사되면 두 정당 지지자들의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대연정과 동시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함께 개헌을 추진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고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 2026년부터 대선 및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2년마다 엇갈려 치르도록 주기를 맞출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존의 지혜를 깨달을 때도 됐습니다. 상대 정당과 지지자들이 아무리 미워도 그들을 이 땅에서 다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가장 중요합니다. 총선 참패 직후인 지금은 오롯이 윤 대통령의 시간입니다. 권력을 나누지 않으면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정치는 발전할 수도 있고, 퇴행할 수도 있습니다. 통합할 수도 있고, 분열할 수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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