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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그림 속 300년 전 ‘삼각관계’?···“그림이 살아 움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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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1회 작성일 24-08-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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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중 신윤복의 ‘혜원전신접’ 전시 전경. ‘혜원전신첩’ 30점의 그림을 기생 ‘춘홍’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간송미술관 제공

(아래)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중 신윤복의 ‘혜원전신접’ 전시 전경. 신윤복의 ‘월하정인’의 그림이 등장하고 있다. 이영경 기자

간송미술관 몰입형 미디어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국보 등 99점 디지털 콘텐츠로

내년 4월30일까지 DDP서


마을의 부자 최대감이 연회를 열고, 평소 점찍어놨던 기생 춘홍을 부른다. 양반들이 기생과 어울려 유흥을 즐기는 연회장에 춘홍이 들어서자, 최대감은 한눈에 반하고 만다. 최대감은 유곽을 찾아가 춘홍에게 수청을 들라하지만, 춘홍의 표정은 차갑기만 하다. 춘홍에겐 사랑을 약속한 정인이 있었다. 정인 이난은 공부를 하러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춘홍은 집요하게 수청을 요구하는 최대감과 불확실한 이난과의 사랑 때문에 흔들린다. 춘홍은 이난을 찾아 산으로 향하고, 같은 시간 이난은 춘홍을 찾아 마을로 향한다. 두 사람의 발길은 안타깝게 엇갈리고 만다. 해가 진 이후에야 마침내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밤하늘에 눈썹달이 떠오른다. 바로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 속 장면이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몰입형 미디어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에선 조선후기 대표적인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가슴 졸이는 ‘삼각관계’를 펼쳐보인다.

‘혜원전신첩’ 30점 스토리텔링···기생 ‘춘홍’ 중심으로 풀어가

간송미술관 소장품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신윤복의 그림 30점 속 인물과 풍경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동시에, 기생 춘홍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볼거리와 스토리텔링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달밤 아래 비밀스레 만나는 남녀를 그린 ‘월하정인’, 단옷날 그네타기 놀이를 나온 여인들을 그린 ‘단오풍정’, 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주유청강’ 등 신윤복의 섬세하고 해학적인 그림 속 명장면이 사방 벽에 생동감있게 움직이며 관람객을 300년 전 조선으로 이끈다.

“‘혜원전신첩’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기생이 있었어요. 그 기생에게 ‘춘홍’이라는 가상의 이름을 붙여주고, 춘홍을 중심으로 서른 장 그림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죠. 자주 등장하는 서생에게 ‘이난’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삼각관계의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지난 13일 DDP에서 만난 신재희 봄랩 대표가 말했다.

젊은 세대와 해외에 한국 문화유산 알리고자···“한국 문화유산 IP와 기술력 뛰어나”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보물을 이용해 만든 최초의 대규모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다. 젊은 세대에게 쉽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소장품을 활용해 디지털전시로 만드는 간송미술관의 브랜드 ‘이머시브K’(Immersive_K)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선 국보·보물 등 99점이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돼 총 8개의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 모션그래픽, 라이다센서, 키네틱아트 등의 기술을 활용해 관람객들과 상호작용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Z세대 등 다양한 세대가 우리 문화유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디지털 전시를 기획했다. 기존 몰입형 전시가 서구 작품을 중심으로 제작됐는데, 우리도 훌륭한 지식재산권(IP)을 갖고 있고, 기술적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며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에 문화유산을 수집하며 내세운 ‘문화보국’의 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 한국의 문화유산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명은 간송미술관 설립자 전형필이 광복 후 남긴 예서대련에서 따왔다. 일제강점기, 어둠의 시대를 지나 광복의 새 시대를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한 문장이다.

‘혜원전신첩’을 보러가는 길, 겸재 정선이 금강산과 관동 지방의 절경을 찾아 나서 그린 ‘관동명승첩’과 ‘해악전신첩’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선의 여행길을 따라나선 듯, 관동팔경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펼쳐지고, 금강산의 웅장한 봉우리들이 낮과 밤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려한 금강산, 역동적인 추사의 붓질···몰입형 전시 매력 극대화

세 작품이 신윤복과 정선 그림의 아름다움과 정수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면서 관람객들을 그림 속 이야기로 초대한다면, 정선의 ‘금강내산’과 이정의 ‘삼청첩’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과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또한 세종의 철학과 한글 창제 원리를 우주의 빅뱅처럼 화려하게 시각화해 보여준다.

‘금강내산’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동하는 금강산의 모습과 자개로 표현한 금강산의 절경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매화·난초·대나무를 먹으로 물들인 검은 비단에 금가루로 만든 물감을 그린 ‘삼청첩’은 반짝이는 금빛 입자들이 일렁이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금강내산’을 제작한 황세진 감독은 “정선이 30대와 70대 두 차례 금강산을 그렸는데 두 그림이 무척 다르다. 당시 정선이 화선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지금은 LED가 화선지고 컴퓨터그래픽이 붓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별 맞춤 ‘향기’로 오감 자극···문화유산 현대적 재해석

전시실마다 작품과 주제에 어울리는 향기를 이용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를 꾸몄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전시한 공간은 겹겹이 드리워진 천을 통과하며 점차 미인도에 다가가도록 만들어졌는데, 신비로운 정원의 향기를 코끝에서 느낄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힘찬 붓질을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관에선 은은한 먹향이 피어오른다.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한 몰입형 전시관이 ‘고자극’이라면 사유하고 명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국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은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만들어진 17.5㎝의 작은 불상이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을 표현한 전시관에선 낮과 밤,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추의 움직임 아래 물에 잠긴 실물 크기의 불상을 볼 수 있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시간의 영원성 앞에 선 인간의 유한함, 부처의 자비 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작업에 참여한 김기라 작가는 “이미지를 최대한 빼고 사유와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국보와 보물 등 한국의 문화유산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혜원전신첩’은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인 조선시대의 풍속을 천민 신분 여성이었던 기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에 더해 여성의 자아실현 의지, 권력과 욕망, 사회적 관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역시 영원하고 싶지만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한다. 전시는 내년 4월30일까지. 관람 예약은 인터파크티켓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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